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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사상 첫 만점받은 오승은양 공부법

“요령 부리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글 이영진 (자유기고가) / 사진 신원건 기자,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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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8년 예비고사가 치러지기 시작한 이래 학력고사, 수능시험 등 국가가 주관해온 대학입시 30년 역사상 첫 만점자로 기록된 오승은양(18·한성과학고등학교). 만점 소식이 전해진 12월16일 오양의 집은 밤늦게까지 울려대는 전화와 거실에 가득한 축하화분으로 세인들의 높은 관심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화제의 주인공 승은양은 이런 소란스러움에 당황하는 눈치다.

“제 생각엔 신문에 누가 만점 수석했는지 정도만 알 수 있도록 짧게 보도하면 될 것 같아요.”

사실 수능 만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 기쁨을 한껏 드러낸 것도 승은양이 아니라 엄마 이우인씨(47)였다. 만점의 낌새를 알아차린 것은 수능시험 직후. 이씨는 시험을 치른 뒤 ‘모르는 문제가 있었냐’는 물음에 승은양이 서슴없이 ‘없다’고 대답해 어렴풋이 만점을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달 가채점을 하고 온 승은양의 말은 다 맞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딸 앞에서 그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이씨에게 승은양은 “하나 틀린 사람하고 다 맞은 사람하고 실력에 차이가 있어요?”라며 제법 어른스럽게 대꾸했다고.

“만점자가 1백명은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 만큼 저는 1백명 중에 한 명일 뿐이라고 여겼죠. 실제로도 만점은 한 명이지만 하나 틀린 사람은 정말 1백명쯤 될 거예요.”

주변의 환대에 정확한 선을 긋는 당돌할 정도로 자기 주장이 분명한 요즘 청소년이다.

시험은 끝났다지만 요즘 승은양의 하루는 수능시험 전과 별 다르지 않다. 물론 생활 패턴은 바뀌었지만 공부하는 것만은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고, 과학관련 도서를 탐독하고 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폴 데이비스의 <현대물리학이 탐색하는 신의 마음>을 시작으로 <과학이란 무엇인가> <한국사에도 과학은 있는가> <과학의 종말> 등의 책을 읽었다.

그런가하면 최근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의 지도하에 스터디 그룹을 결성해 영어로 쓰여진 원서 몇 권도 읽고 있다. 점수발표 후 인터뷰다 축하전화다 해서 이틀 동안 공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운 듯한 태도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그동안의 얽매임을 보상받으려는 듯 공부 외적인 것들에 매달리는 청소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취미요? 공부를 취미생활로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정말 하고 싶어 공부를 하는 것이니까요.”

승은양에겐 공부가 특기이자 취미인 셈이다. 고 2때까지는 잠도 충분히 잤다. 3학년 때는 하루평균 5시간 정도 잤고, 주말에는 푹 잤다고.

과학고 3년간 전교 1등 놓치지 않은 ‘닥터 오’

어머니 이씨는 1남1녀 중 막내인 승은양을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이라고 평한다. 피아노를 배울 때도 그랬고, 다른 학과공부를 할 때도 배우는 속도가 남달랐다. 만점 경력도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시험을 볼 때면 거의 매번 만점을 맞았다. 자연 부모로부터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승은양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강남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산수경시대회에 나간다는 얘기를 대회가 임박해서야 뒤늦게 듣게 된 이씨는 딸에게 관련 문제집이라도 사줄까 하고 물었다. 하지만 승은양은 용돈으로 이미 자기보다 한 학년 위의 문제집을 사서 문제를 다 풀어본 상태였다. 좋으면 자기 스스로 알아서 찾아하니, 부모도 잔소리할 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잠원동 신동중학교 시절에도 영어, 수학 등 기초과목만 시험볼 때면 전교 1등은 떼어논 당상. 수석졸업도 승은양의 몫이었다. 한성과학고에서도 마찬가지. 시험을 보면 나온 점수가 1백점이거나 그에 약간 못 미치는 점수가 대부분이었다.

“전 요령으로 공부하는 체질이 아니에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요.”

승은양의 공부 방법은 근본원리를 이해하는 데 있다. 그래서 한번 매달리면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이 집요하게 파고든다. 학교도서관에서 원서를 찾아 공부하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대학연구소에 문의하기도 했다. 인터넷도 적절히 활용했다. 인터넷은 훌륭한 정보원은 못 되지만 과학 분야를 응용할 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게 승은양의 평.

“승은이는 발표 과제를 할 땐 온 정성을 쏟았어요. 혼을 불사른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땐 엄마로서 후닥닥해놓고 공부나 좀 하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다 나름대로 거름이 되었나봐요.”

교과서 중심이 아니라 폭넓고 심도 깊게 이뤄지는 과학고의 수업방식을 승은양은 좋아한다. 승은양의 공부방식과 과학고의 수업방식이 잘 맞았던 셈이다.

하지만 승은양은 과학고 진학에 한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승은이의 고교 진학의 목표는 처음부터 과학고였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는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1년 과정의 학원 강의를 들어볼 생각도 했다. 그런 딸에게 이씨는 지금 공부를 잘하는만큼 일찍부터 진을 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그 시기를 2학기로 미루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여름방학 시기에 과학고 진학의 자격요건이 바뀌면서 졸지에 자격을 잃은 것이다. 영어 수학 국어 과학 성적이 90점이상이어야 하고 석차가 전체 3% 내에 들어야 하는데, 음악, 체육 성적이 부진한 탓에 전체 석차가 이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애석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법한데도 승은양은 “일반 고등학교 가면 돼요. 과학고 취미없어요”라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중학교 3학년 때, 수학경시대회에 입상하면서 입학 기회가 주어졌다. 이씨는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지금이라도 공부해보겠냐며 학원 수강을 권해보기도 했지만 승은양은 과학고에 안 간다고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시험이 다가오면서 승은양은 과학고 쪽으로 급선회했고 결국은 합격을 따냈다.

“남들은 과학고에 가기 위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준비한다는데, 승은이는 일반 고등학교에 갈 요량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합격을 했으니…. 그날 승은이 아빠와 함께 내 자식이지만 도대체 어떻게 공부하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말을 주고받으며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일은 이씨가 승은양의 진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과학고에 입학해 승은양에게 전교 1등을 도맡아했고,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는 ‘닥터 오’로 통했다.

사실 수석을 했다거나 만점을 맞았다면 남다른 교육법이나 열성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승은양은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어느 한 가지 방법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과외와 학원도 그 방법 중 하나. 부족한 부분을 짧은 기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됐다. 고교 1학년 때는 물리 과외를 한 달 동안 2~3시간 받았고, 고 3때는 국어 과목을 수능시험 바로 전에 한달 코스의 학원 단과반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기숙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주중에는 불가능했다. 집에 오는 주말에 잠깐 짬을 내서 했는데, 한달이라고 해야 4회에 불과했다.

“과외나 학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만 단기간 들어서 보충했어요. 국어같은 경우는 새로운 것을 배우러 가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정리가 될 수 있도록 가볍게 들었지요.”

하지만 승은양이 수능만점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 것은 풍부한 독서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독서량이 많았다. 순전히 책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 부모의 덕분이었다. 이씨는 평소 책을 많이 사다주는 편이었다. 승은양이 유치원시절, 이씨는 방문판매로부터 백과사전 한 질을 들여놓았다. 빠듯한 살림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나니 금세 후회가 됐다. 그런데 승은이는 자고 일어나면 기어가 엎드린 채 끝도 없이 책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재미나서 이씨는 책을 틈틈이 사주는가 하면, 책방에 데려가 아이를 ‘풀어놓기도’ 했다. 요즘도 가끔씩 승은양은 그 옛날 읽었던 책들을 찾는다. 어려서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심도있는 내용을 잘 서술했다는 되새김질 때문이다.

독서 통해 과학에 대한 관심 발굴해

그런가하면 아버지 오형환씨(51)는 책을 읽는 모습을 직접 자식들에게 보여주었다. 집에 들어오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런 만큼 승은양의 식구들이 텔레비전만 목이 빠져라 쳐다보는 모습은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풍경이다. 승은양은 좋아하는 과학도 책 속에서 발견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인슈타인, 뉴턴 등의 과학위인전기를 비롯해 과학책 붐이 한창이었어요. 그때 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6학년이 되면서 물리학에 흥미를 가졌어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우주나 소립자에 관심을 가졌고요.”

이렇듯 다양한 책들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취향이 되고, 서서히 뿌리를 내린 과학에 대한 관심은 이제 물리학으로 이어져 있다. 독서가 수능에 좋은 자양분이 되기도 했지만 승은양 자신의 길을 찾는 안내자 역할도 한 셈이다.

승은양이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영향을 받고, 힘이 되어준 사람을 고르라면 역시 부모를 꼽을 수 있다. 승은양은 ‘강남 사는 아이’ 같지 않다는 얘길 곧잘 듣는다. 검소한 옷차림 때문이다. 메이커를 따져 옷을 사는 일이 없다. 한번은 동네 안경가게에서 안경을 맞춘 적이 있었다. 시력검사 후 안경을 찾으러 갔던 승은양은 얼굴이 발그레해서 그냥 왔다. 빤히 아는 동네 가게라 가격을 묻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안경가격은 7만원. 아빠가 남대문 시장에서 5천원짜리 안경을 사서 쓰는데 어떻게 7만원짜리를 쓰겠느냐는 게 승은이의 항변이었다. 이런 승은양의 검소함은 아버지에 의해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이다.

아버지 오형환씨는 제8회 행정고시에 수석합격해 구총무처의 조직국장 인사국장, 소청심사위원 등을 거쳐 현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장을 맡고 있는 고위 공무원. 시민의식도 남다르고, 근검절약 정신도 언론에 화제가 되곤 한다.

“어려서 아이가 수두에 걸린 적이 있어요. 달리 처방을 않고 데리고 있으니까 퇴근 후 남편이 아이를 업고 약방으로 가더군요. 근데 약방에 들어가질 않고 문앞에서 안만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는 거예요. 약방 안에 아이 업은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그 아이에게 내 딸 병을 옮길까봐 그 아주머니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 거예요.”

서울 방산중학교 사회 교사인 어머니 이씨 또한 승은양의 오빠 석준군(성균관대 기계공학부 1학년)과 승은양의 상담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하지 말고 큰 줄기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해요. 산꼭대기까지 가는 동안 몇 개는 흘릴 수도 있는데 거기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산꼭대기에 오른 후에 놓친 것은 눈에 들어오고, 충분히 주울 수 있거든요. 공부하는 데도 여백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어려서도 학원을 두 군데 이상 한꺼번에 보낸 적이 없어요. 나머지 시간 동안은 심심해서 버둥거려 보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이씨는 승은양에게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절대 아니란다. 승은양은 공부하는 데 안달 부리거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티를 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기 방에서 공부하다 얼굴 발그레해져 거실로 놀러 나와 잠깐 쉬고 다시 제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이씨는 아이가 공부 때문에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조금도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승은양 스스로가 ‘노력형’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제서야 나름대로 열심히 했나보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란다.

승은양은 소위 공부만 아는 ‘공부벌레’와는 거리가 멀다. 학교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교지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학급문집을 만들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승은양은 특히 바흐의 곡을 즐겨 듣는다.

그런가하면 부모가 미술계통으로 나가리라 예상할 만큼 어렸을 적엔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사물을 관찰하는 눈이 예리하고 사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게 탁월해서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따로 미술 공부를 해보라고 권할 정도였던 것. 그래서 이씨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일반 학교가 아닌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의 진학을 먼저 타진했다.

플루트며 피아노도 통과의례처럼 배웠다. 하지만 엄마가 억지로 권유하고 아이는 거부를 못해 꾸역꾸역 다니는 식은 결코 아니었다. 이씨가 권유를 하면 승은양은 쾌히 받아들였고, 어느 정도 배웠다 싶은 생각에 승은양이 그만 배우겠다고 상의를 해오면 엄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현재 승은양은 서울대학교 자연대 자연과학부 기초과학 계열에 합격한 상태다. 앞으로의 꿈은 대학에서 소립자 물리학을 전공한 뒤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규명하는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는 것. 그만큼 소립자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가장 어렵기 때문에 재미있어요. 어려운 것을 파고들어 하나하나 알아갈 때 쾌감을 느껴요.”

하지만 물리학이란 ‘먼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부모는 내심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엔 아이가 물리학을 공부하겠다는 데 놀랐어요.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가 얘기하는 과정에서 물리학 용어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 퍽 오래 전부터더군요. 나름대로 아이는 물리 분야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대학이라는 조금 더 큰 사회를 향해 한 발을 성큼 내디딘 오승은양. 인생의 긴 과정중 출발점에서 얻은 성과인만큼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 또, 인생의 길을 가다 힘에 부쳐 좌절을 한다 해도 그것 또한 자신의 몫이고, 스쳐지나가는 순간임을 믿는다.

(여성동아 1999.01)

by ihaveshing | 2007/04/09 10:55 | 깨닫자고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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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200문장영어 at 2008/07/0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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